매년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KBS2, 2004.11.8~2004.12.28).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이 드라마를 보고 난 후부터 임수정의 팬이 됐다는걸 알거다.-_-
정확하게는 배우 임수정이 아니라, 임수정의 배역이었던 "송은채"의 팬이 된거지만..아직도 임수정씨의 신문 기사를 접하거나 영화를 보면, 송은채의 모습이 보인다..
2004년 겨울은 군대에 있을 때였다. GOP에서 겨울을 맞으며 슬슬 추워지기 시작한 때라 좀 힘들고, 외박도 없고 휴가도 잘 못나가는 곳에서 한창 외로웠던 시기였다. 마침 이 드라마 덕분에 덜 힘들 수 있었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소초원 29명 모두가 이 드라마로 인해 힘을 냈고.. 내무실과 취사장에서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눈의꽃"이 울려퍼졌다.
야간근무 중에 내무실에 쉬러 들어오면(우리 GOP 야간근무는 1.6km 섹터를 해가 져있는 시간의 1/2동안 왔다갔다 계속 걸어다니는거라, 겨울에는 내무실에 들어와 몸도 녹이고 잠깐 쉬기도 한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이하 "미사") 보느라 다시 밖에 나갈 생각을 안했다.-_- 밖에 있는 근무조는 미사 하는 시간에 내무실에 들어가 있으려고 생 발악을 해댔고, 소초장(소대장)님으로부터 쫓겨나다시피 밖으로 다시 나가서는.. 근무 서며 서로 미사 이야기를 했다. 좀 슬픈 장면을 보고 난 후에는 둘다 아무 말없이 북쪽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12월 28일 밤(미사 종방일)은 정말 슬픈 분위기의 근무였던걸로 기억된다.-_- 물론 군대였기 때문에 본방 사수는 힘들었다. 그래도 주말 재방송때 꼭 챙겨보고 그랬다. 갇혀 지내는 신세였지만, 바깥 사람들처럼 우리도 미사 폐인이었다.
미사 폐인들이 그렇듯, 드라마가 끝나고 꽤 오랫동안 여운이 남더라. 요즘도 노래를 듣다가, 박효신씨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부른 "눈의꽃"이 흘러나오면 드라마의 장면들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_- 뭔가 가슴도 먹먹해지고 그런다. 그래.. 나도 인간이고, 감정이라는걸 느낄 줄은 안다.ㅋㅋ
그리고 2005년, 2006년, 2007년..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드라마가 미사이다. 그래서 며칠전에 드라마를 구해 집에서 다시 봤다.
총 16부작인데, 정말 순식간에 다 봤다. 줄거리를 다 아는데도, 하나를 보면 곧장 또 안볼 수가 없었다. 진짜 지독한 드라마구나. 드라마를 이렇게 본 기억이 전무후무하다..
사실 3년 전에 볼때는 송은채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군인(할머니도 여성으로 느껴진다는..-_-)이어서 그랬던건가. 사실 임수정씨가 미사에서 엄청 떴지. 어그 부츠를 비롯한 패션도..ㅋㅋ 그때 겨울에 휴가 나와서 인천 왔더니, 학교에서 지나다니는 여자들 대부분이 어그 부츠 신고 있더라.ㄷㄷ
암튼 그 시절 그렇게 은채 은채 하면서 고참도 눈에 안보이고 은채는 자기꺼라며 난리쳤었는데..-_- 이번에 드라마를 보면서
차무혁이 그렇게 멋지게 보일 수가 없더라.
난 그 전까지 소지섭이라는 배우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었다. 그냥 그랬다. 표정이 너무 우울해보였다. 뭔가 좀 어두워보이고, 비호감..까진 아니었지만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미사를 보면, 차무혁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기에 소지섭씨만큼 딱 맞는 배우가 없을 것 같다. 차무혁은 어떤 표정을 지어도.. 눈에서 슬픈 무언가가 느껴진다. 웃고 있어도 그의 눈에서는 지독한 외로움과 슬픔이 보인다.
이런 차무혁을 보며 난 많이 안타까웠다. 혼자서 끙끙 앓잖아.. 사랑을 하든, 슬퍼하든, 미워하든.. 뭐든 혼자 숨어서 한다. 혼자서 그렇게 힘들어하면, 어떻게 보면 멋있기도 하지만.. 결국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거잖아. 드라마니까 그나마 시청자라도-_- 알아주는거지, 현실에서 혼자 말못하고 속으로 정리하는건 결국 혼자 크게 상처입는거니까.
암튼, 정말 멋있게 나왔다. 소지섭.. 가슴아프고, 슬프고 그랬다.
유명한 라면씬. 나도 눈물 글썽글썽..
이 드라마에는 진짜 나쁜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오들희 여사.. 3년전 드라마를 처음 볼때부터.. 초중반에 너무너무 싫었다. 하지만 후반부에 반전 아닌 반전(?)을 접하며, 결국 이분도 여느 어머니처럼 자식 사랑하는 따뜻한 감정을 지닌 사람이라는걸 알게 됐다. 무혁도 이걸 알고부터 많이 슬퍼했다.
암튼 다들..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고 그 기억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나, 이젠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나에게 무슨 짓을 했든, 모질게 대하든, 사람 자체는 미워하지 않게 됐다.
어떤 말과 행동을 하든지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
더 나아가, 상대방과 관계있는 사람의 입장까지 생각해보기도 한다.
굳이 깎아내리면서 나쁘게 말하자면, 소심하게 눈치보는거라고 할 수도 있다.-_-
그래도 저런 식으로 소심한거라면 괜찮은거 아닌가. 속좁게 구는게 진짜 소심한거지..
정말 나서야 할때 못 나서고 손가락 빨고 있는게 진짜 소심한거지.. 하하하
모두들 자기만의 사정이 있고,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는거다.
이해해주기 위해 노력할거다.
미사, 참 좋은 드라마다. 평생 이런 드라마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드라마를 보게 된 타이밍도 잘 맞아떨어진 것도 한몫했지만 말이다.ㅎㅎ
무혁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채..
처음부터 끝까지 외로워하고 아파하기만 하다가 갔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